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탈란타 BC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* [[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|인테르]]와 같이 팀의 대표색이 검정/파랑인데 아탈란타의 성적이 더 좋은 시즌이면 "진정한 네라주리(Nerazzurri; 검/파)는 아탈란타" 같은 드립이 흥한다. 사실 아탈란타가 인테르보다 먼저 창단된 팀이었으니 굳이 말하자면 틀린 말은 아니다. 공교롭게도 베르가모와 밀라노는 거리도 매우 가깝다. 실제로 양 서포터즈 간의 폭력 사태가 일어난 적도 있었다. * 대륙 대회에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아니고 특출난 유명 선수도 없었기에 세리에 팬이 아니라면 인지도가 떨어지는 팀이지만 응원가 하나는 상당히 좋다. [[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BWRjZ5tZh9I#|직접 들어보자]]. [[https://youtu.be/x1Jb36zwiws|이 노래도 들어볼 필요가 있다.]] 원래 구단 응원가라는 게 호불호가 상당히 갈리지만 전체적으로 반응이 좋다. 그도 그럴 것이 첫 번째 노래는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밴드 i Pooh의 로비 파치네티가 만든 노래다. "아탈란타는 들어본 적만 있는 관심없는 팀이지만 노래는 좋네?"라는 댓글이 많다. * [[영구결번/스포츠|영구결번]]이된 페데리코 피사니는 [[세리에 A]]에서 통산 44경기에 출전하여 5골을 넣었다. 피사니는 1997년 2월 12일 여자친구 알레산드라 미달리와 2명의 친구와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갔다. 그렇게 카지노 디 캄피오니 디탈리아란 이벤트 홀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피사니와 피사니의 여자친구인 알레산드라 미달리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두 친구는 아무 부상없이 멀쩡했다. 피사니의 나이는 고작 22세였고 피사니가 사망한 도시는 밀라노였고 그가 몬 차는 BMW 320 컨버터블이었다. 참고로 피사니의 고향은 [[토스카나]]에 있는 인구 약 4만 6천여 명이 살고 있는 작은 도시인 카판노리이다. 커리어는 1992년부터 그가 사망한 1997년까지는 아탈란타 소속이었으나 1993년에는 몬차에 임대되었다. * 이 팀에 입단할 뻔했던 선수가 바로 [[제주 유나이티드]]의 수비수 [[정운(축구선수)|정운]]이다. 2015-16 시즌 전반기까지 [[프르바 HNL|크로아티아 리그]] 베스트급 왼쪽 수비수로 뛰고 있던 정운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오퍼한 구단이 바로 아탈란타. 무려 5년 계약을 제시하면서 정운의 이적을 원했다고 하는데, 타이밍이 안 좋았던 것이 이때 정운의 나이가 '''만 26세'''를 막 찍기 직전이라 [[병역]] 문제 해결 가능 기간이 얼마 안남았던 때였다는 것이다. 거기에 크로아티아로 진출하면서 정운은 국내 에이전트가 아닌 해외 에이전트를 고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에이전트도, 현 소속 구단도, 아탈란타도 모두 한국의 징병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협상에 난항을 겪었다고 한다. 결국 이런 이유 때문에 정운과 아탈란타는 인연을 이어가지 못했다. 정운도 수비수지만 공격적인 [[풀백]]이라 아탈란타의 공격 축구에도 맞았고, 특히 2016-17 시즌부터 아탈란타가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기 때문에 정운의 이적 불발은 선수에게도, 국내 축구 팬들에게도 아쉬운 일화로 남아 있다. * [[피파 22]]에서는 갑자기 아탈란타라는 이름 대신 '''베르가모 칼초'''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다. 아무래도 [[코나미]]의 [[eFootball™ 2022]]가 라이센스를 단독으로 계약 맺어서 생긴 것으로 보인다. 그래서 작년의 유벤투스(피에몬테 칼쵸)도 그러했듯이 여기도 적용이 되었다. [각주] [[분류:아탈란타 BC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